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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삶과문화』Vol.84 AI시대와 예술

No: 11

작성자: 경영기획팀

작성일: 2023-12-29 16:42:48

조회수: 87

본 내용은 재단 기관지 삶과 문화 겨울호에 게재됐습니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AI 시대,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지닌 인간에게 과연 다른 예술은 가능한가? "
글 김재인(철학자,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Q “AI가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예술 창작’의 정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프롬프트를 설정하고 결과물을 평가하여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보면 AI는 예술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예술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는 정서가
본인에게 의미 있을 때 그것을 예술 행위에 의한 작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A 작품의 감상과 작품의 창작은 약간 별개 영역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창작된 작품에 대해 감상이 있을 수 있지만 또한 동시에 자연을 감상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거기서 받는 감동, 느낌, 감상이 어느 편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얘기할 여지도 전혀 없습니다.
이국적인 풍경 앞에서 느끼는 감상도 있고, 심지어 애들 장난 속에서도 충분히 뛰어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든 감상 행위를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18세기 이래로 인간이 ‘예술 창작 활동’, ‘창작 활동’이라고 할 때 중요하게 여긴 지점이 뭘까가 쟁점입니다.
동시에 현대인이 최근 200~300년 동안 작품을 창작했다고 할 때 어떤 점 때문에 높게 평가하는 걸까요?
그것을 왜 괜찮은 활동이라고 보는 걸까요? 이 점을 파악하는게 중요합니다.
이 지점에 뭐가 걸려 있느냐? 인간의 ‘우월함’, ‘탁월함’이라는 요소가 그걸 통해 발현 되기 때문에 창작을 높게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탁월함’이란 말은 현대어 영어로 excellence 정도의 뜻입니다. 도덕적으로는 ‘버추(virtue)’라고 하지만,
마키아벨리 시대로 거슬러 가면 ‘비르투(virtù)’라고 불렀습니다. ‘버추’라는 말은 너무 도덕적인 뉘앙스가 강한데,
‘비루트’라고 하면 인간으로서의 탁월함에 더 가깝죠. 고대로 거슬러 가면 그 리스어로 ‘아레테(arete)’라고 합니다.
‘덕’이라고 번역하지만 ‘훌륭함’ 혹은 ‘탁월함’이죠. 그러니까 인간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점이 뭐냐?
저는 근현대인이 예술 창작이라고 부른게 이 문제로 수렴한다고 봅니다.

현대어 아트(art)의 어원을 추적하면 라틴어 아르스(ars)입니다. 아르스의 기원을 거슬러가면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로 갑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다룬 작업도시 창작 작업도 테크네였어요.
흥미로운건 테크네가 고대에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아르스’가 되었는데,
다른 한편으로 18세기에 ‘테크닉’의 어원이 됩니다. 원칙적으로 동일한 활동인 테크네가
한편으로는 예술로 한편으로는 기술로 분기되는 지점이 생긴겁니다.

그래서 현대에도 예술과 기술(테크닉, 테크놀로지)은 서로 굉장히 다른 활동으로 생각되는거죠.
그 둘 사이에 쓸데없는 논란이 빚어지기도 하는데요.
거슬러 올라가면 이 테크네의 본질이 뭐냐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Q 사진기의 발명이 예술에 대한 다른 생각과 시도를 촉발했듯이
인공지능 역시 그런 촉발을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요?
개념예술의 등장 역시 그런 변화 속에서 등장한 것 아니었을까요?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예술론이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A 사진기의 발명이 예술에 대한 다른 생각과 시도를 촉발했다는건 미술의 역사에서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당시 사진기가 잘하는 작업을 피해서 새로운 시도를 한 결과 현대미술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사실은 다른 신기술도 있었습니다. 굳지 않는 물감이 튜브에 담겨서 나오기 시작했던거죠.
그 덕분에 야외 작업이 가능했고요. 그전까지의 인물화, 정물화를 제외한 모든 풍경화가 상상화였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그린게 아니니까요. 사진기가 발명되고 튜브 물감이 발명되면서 비로소 상상화가 아닌 풍경화가 시도될 수 있었어요.

이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미디어 또는 매체의 관점에서 봤을때
사진기의 등장은 굉장히 주목하는데 또 다른 미디어인 물감은 강조를 안하니까요.
사실은 신기술 A에 대해서 신기술 B로 응대하고 돌파구를 찾은 거라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진기와 새로운 예술(훗날 인상주의라고 부르게 된)의 등장 사이의 관계는 ‘피해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술이 대안을 찾은 거죠.

그럼 인공지능은 어떠하냐? 지금 얘기되는걸 보면,
인공지능이 과거 인간이 작업한 예술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비집고 들어온다’고 보는것 같아요.
인공지능이 그림도 그린다는 표현에서 잘 드러나는 거죠. 그래서 사진기와 새로운 예술의 관계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인공지능이 과거의 창작 미디어와 경쟁하는 구도라면,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컴퓨터 안에서 작동하고, 컴퓨터의 하드웨어가 중요한 역할을 해요.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인데,
주로 디스플레이나 스피커를 통해 인간과 만나게 되고 거기에 모터 같은게 진동과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은 시각, 우리의 운동 감각과 관련된 몇 부분, 그다음에 청각, 이런 정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경험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줄 수 있는 경험의 가능성과 한계를 같이 짚어봐야 합니다. 저는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나온 작품에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가령 애플 비전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부분을 굉장히 강화하는거죠.
근데 저는 감각이 과도하면 토할 것 같고 어지럽고 무서워요. 4D 영화관도 부담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