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Vol.84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에게 남긴 것
- No
- 12
- 작성자
- 경영기획실
- 작성일
- 2023-12-29 16:43:20
- 조회수
- 78
본 내용은 재단 기관지 삶과 문화 겨울호에 게재됐습니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얼굴 없는 예술과 예술 없는 얼굴 "
글 김동현(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1
코로나 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방역의 시대를 감내했다.
마스크는 필수였고 거리두기는 현실적 대안이었다. 전지구적인 감염의 공포 앞에서 방역 우선주의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감염 예방을 위해 국경 봉쇄를 선택하기도 했다. 백신이 채 개발되지 않았던
팬데믹 초기 감염의 공포는 당연한 위협이었다. 백신이 개발되고 예방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 팬데믹을 성찰하고 진단하는 목소리들도 다양해졌다. 팬데믹의 원인과
이후의 삶에 대한 전망들 대다수는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 로 나눠질 것이었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팬데믹 패닉』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길은 ‘협력과 연대의 지구공동체’라고 말한다.
과학이 감염 예방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린 시대에 지젝은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젝은 인류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혁명적 수준의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며 이 를 위해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코로나 19 이후의 삶이 코로나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코로나 19 초기 마스크 착용 문제를 둘러싸고
지젝과 의견이 갈라졌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도 코로나 이후야말로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접촉이 금지되어 버린 시대, 보건의 이름으로 인 간의 정치성을 빼앗는 국가를 비판하는 아감벤은 지젝과는 다른 차원에서 정치의 복원을 말한다.
맥락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의 견해가 새로운 정치를 호명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과학과 의학에 대한 종교적 맹신이 바이러스 시대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2
코로나 팬데믹 3년을 겪으면서 우리는 재난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까뮈(Albert Camus)가 『페스트』에서 썼듯 바이러스는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을 제외하고는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용 시장은 취업 시장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20~30대의 취업률은 다른 세대에 비해 낮아졌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여건 또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정규직과 상위 10% 이상의 자산계급의 자산은 오히려 늘어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IMF 경제 위 기상황보다 더 나빠졌다.
‘재난 불평등의 시대’가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3년이 남긴 현상을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K-방역이라는 자화자찬은 역설적으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접촉을 스스로 포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감염의 공포는 코로나 19만이 아니었다.
지젝은 그것을 스페인 독감 등 인류가 직면했던 수많은 사례를 통해 말하면서
코로나 초기 행해졌던 수많은 방역 조치들이 공동체를 유지해왔던 정상성을 비정상의 상태로 간주하는 일종의 긴급 조치로 이해한다.
그는 거리두기와 ‘셧다운’ 조치들이 이웃을 우리 삶에서 삭제해 버렸다고 말한다.
“위험으로부터 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우리 이웃이 전염 사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우정과 사랑의 금지 를 받아들였다.”는 그의 지적은 ‘성공적 방역 조치’의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 준다.
그렇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에 잃어버린 것은 타자와의 만남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종 이었다.
마스크는 접촉을 외면하는 알리바이가 되어 버렸고 그러는 동안 우리는 타자를 잃어 버렸다.
코로나 19 이후 긴급하게 내려진 일련의 조치들이 문화예술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이의 실종’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를 성찰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3
우리는 안다. 문화란 결국 ‘나’라는 세계와 ‘너’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우리’의 축적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시간의 지층이 만들어낸 무늬다. 그것은 ‘나’라는 날줄과 ‘너’라는 씨줄이 교차한 흔적이자,
‘나’라는 문을 열어 ‘너’라는 틈으로 스며드는 하나의 번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무늬를 직조해야 할 것인가.
어떤 번짐으로 스며들어가야 할 것인가. 우리의 질문은 본질을 향해 던지는 투창이어야 한다.
궁극을 겨냥하는 화살이어야 한다. 언택트 나 온라인이라는 지엽적 대안이 아니라 본질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모색이기 때문이다.
엔데믹 이후의 대안이 얼굴 없는 예술에서 예술 없는 얼굴이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회한으로 눈물짓더라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낯선 얼굴들을 직시하는 대면이어야 한다.
접속에서 벗어나 접촉으로 향하는 수많은 미끄러짐이어야 한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얼굴 없는 예술과 예술 없는 얼굴 "
글 김동현(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1
코로나 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방역의 시대를 감내했다.
마스크는 필수였고 거리두기는 현실적 대안이었다. 전지구적인 감염의 공포 앞에서 방역 우선주의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감염 예방을 위해 국경 봉쇄를 선택하기도 했다. 백신이 채 개발되지 않았던
팬데믹 초기 감염의 공포는 당연한 위협이었다. 백신이 개발되고 예방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 팬데믹을 성찰하고 진단하는 목소리들도 다양해졌다. 팬데믹의 원인과
이후의 삶에 대한 전망들 대다수는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 로 나눠질 것이었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팬데믹 패닉』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길은 ‘협력과 연대의 지구공동체’라고 말한다.
과학이 감염 예방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린 시대에 지젝은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젝은 인류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새로운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혁명적 수준의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며 이 를 위해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코로나 19 이후의 삶이 코로나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코로나 19 초기 마스크 착용 문제를 둘러싸고
지젝과 의견이 갈라졌던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도 코로나 이후야말로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접촉이 금지되어 버린 시대, 보건의 이름으로 인 간의 정치성을 빼앗는 국가를 비판하는 아감벤은 지젝과는 다른 차원에서 정치의 복원을 말한다.
맥락은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의 견해가 새로운 정치를 호명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과학과 의학에 대한 종교적 맹신이 바이러스 시대의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2
코로나 팬데믹 3년을 겪으면서 우리는 재난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까뮈(Albert Camus)가 『페스트』에서 썼듯 바이러스는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을 제외하고는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용 시장은 취업 시장의 양극화로 이어졌다. 20~30대의 취업률은 다른 세대에 비해 낮아졌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 여건 또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정규직과 상위 10% 이상의 자산계급의 자산은 오히려 늘어난 반면 하위 10%의 소득은 IMF 경제 위 기상황보다 더 나빠졌다.
‘재난 불평등의 시대’가 개선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팬데믹 3년이 남긴 현상을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
K-방역이라는 자화자찬은 역설적으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접촉을 스스로 포기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감염의 공포는 코로나 19만이 아니었다.
지젝은 그것을 스페인 독감 등 인류가 직면했던 수많은 사례를 통해 말하면서
코로나 초기 행해졌던 수많은 방역 조치들이 공동체를 유지해왔던 정상성을 비정상의 상태로 간주하는 일종의 긴급 조치로 이해한다.
그는 거리두기와 ‘셧다운’ 조치들이 이웃을 우리 삶에서 삭제해 버렸다고 말한다.
“위험으로부터 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우리 이웃이 전염 사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우정과 사랑의 금지 를 받아들였다.”는 그의 지적은 ‘성공적 방역 조치’의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잘 말해 준다.
그렇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에 잃어버린 것은 타자와의 만남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종 이었다.
마스크는 접촉을 외면하는 알리바이가 되어 버렸고 그러는 동안 우리는 타자를 잃어 버렸다.
코로나 19 이후 긴급하게 내려진 일련의 조치들이 문화예술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사이의 실종’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를 성찰해야 하는 지도 모른다.
3
우리는 안다. 문화란 결국 ‘나’라는 세계와 ‘너’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우리’의 축적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시간의 지층이 만들어낸 무늬다. 그것은 ‘나’라는 날줄과 ‘너’라는 씨줄이 교차한 흔적이자,
‘나’라는 문을 열어 ‘너’라는 틈으로 스며드는 하나의 번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무늬를 직조해야 할 것인가.
어떤 번짐으로 스며들어가야 할 것인가. 우리의 질문은 본질을 향해 던지는 투창이어야 한다.
궁극을 겨냥하는 화살이어야 한다. 언택트 나 온라인이라는 지엽적 대안이 아니라 본질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모색이기 때문이다.
엔데믹 이후의 대안이 얼굴 없는 예술에서 예술 없는 얼굴이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회한으로 눈물짓더라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낯선 얼굴들을 직시하는 대면이어야 한다.
접속에서 벗어나 접촉으로 향하는 수많은 미끄러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