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Vol.84 사진작가 양동규의 포토에세이
- No
- 14
- 작성자
- 경영기획실
- 작성일
- 2023-12-29 16:44:40
- 조회수
- 80
본 내용은 재단 기관지 삶과 문화 겨울호에 게재됐습니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여름에서 여름으로
‘여름은 계절의 시작이다.’ 계절이 시작될 즈음 나무를 찾아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안개가 되어 잠시 멈춰 선 듯 흘러간다.
물을 머금은 조릿대 사이를 지나 겨우내 쌓였다 사그라드는 나뭇잎을 밟으며 걸었다.
흙으로 돌아가던 잔여물의 웅숭깊은 색을 배경으로 새로이 돋아나는 풀들의 연두빛이 더욱 싱그럽게 발한다.
지난 겨울에도 걸었던 길이다. 여름이 숲을 살찌웠다.
희미하게 방전되었던 나무는 새 옷을 입었다. 다시 만난 나무에 다가가 살며시 손을 대어본다.
그간 잘 있었느냐는 인사 를 전한다. 보드라운 감촉 뒤로 온기가 느껴진다.
백일몽이었던 여름을 보냈다. 무슨 일인가가 갑자기 터져버린 여름도 지나갔다.
터져 나온 여름의 아우성을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 고 가슴에 새겨 몰래 추모하던 여름도 보냈다.
그렇게 버티고 보내며 지켜본 여름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 잊을 수 없는 것들은 남아 화석이 된다.
그렇게 기억은 망각될지언정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말이 없다. 겨울이 온다.
어김없이 오는 너를 이제야 안다. / 여름은 역시나 백일몽이었다고. /
또다시 들뜬 봄은 오고 / 하여 일년이 육십 년이 되기도 했노라고. -김시종 「여름 그 후」 부분, 윤여일 옮김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여름에서 여름으로
‘여름은 계절의 시작이다.’ 계절이 시작될 즈음 나무를 찾아 걸었다.
이른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안개가 되어 잠시 멈춰 선 듯 흘러간다.
물을 머금은 조릿대 사이를 지나 겨우내 쌓였다 사그라드는 나뭇잎을 밟으며 걸었다.
흙으로 돌아가던 잔여물의 웅숭깊은 색을 배경으로 새로이 돋아나는 풀들의 연두빛이 더욱 싱그럽게 발한다.
지난 겨울에도 걸었던 길이다. 여름이 숲을 살찌웠다.
희미하게 방전되었던 나무는 새 옷을 입었다. 다시 만난 나무에 다가가 살며시 손을 대어본다.
그간 잘 있었느냐는 인사 를 전한다. 보드라운 감촉 뒤로 온기가 느껴진다.
백일몽이었던 여름을 보냈다. 무슨 일인가가 갑자기 터져버린 여름도 지나갔다.
터져 나온 여름의 아우성을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 고 가슴에 새겨 몰래 추모하던 여름도 보냈다.
그렇게 버티고 보내며 지켜본 여름을 어떻게 잊을 수 있나. 잊을 수 없는 것들은 남아 화석이 된다.
그렇게 기억은 망각될지언정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말이 없다. 겨울이 온다.
어김없이 오는 너를 이제야 안다. / 여름은 역시나 백일몽이었다고. /
또다시 들뜬 봄은 오고 / 하여 일년이 육십 년이 되기도 했노라고. -김시종 「여름 그 후」 부분, 윤여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