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Vol.85 제주성을 구현한 작가들 ②강광
- No
- 19
- 작성자
- 경영기획실
- 작성일
- 2023-12-29 16:47:59
- 조회수
- 82
본 내용은 재단 기관지 삶과 문화 겨울호에 게재됐습니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불온한 미의식으로 시대의 징후적 위기를 포착한 강광, 그의 제주시대를 기억하다 "
글 박경훈(작가)
“미(美)의 외면은 쉽게 얻어지나, 미의 내면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 강광, 1977년 6월 22일 관점창립전 팸플릿에서
북청사람 제주에 오다
강광(姜光) 선생은 ‘북청 물장수’로 유명한 북청 사람이다. 1940년에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난 그는 6.25 한국전쟁 발발 직전 서울로 이주했다.
부친은 마포에서 양조장을 운영해 나름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성장하면서 경복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진학하나 아버지가 작고하면서 가세가 기울어(투병 과정에서 가산 소진) 대학시절엔 휴·복학을 거듭하는등
입학 6년 만인 1965년에야 어렵게 졸업한다. 졸업 후 군대에 간 그는 월남전에 참전하게 된다. 제대 하고 나서 바로 전국을 여행한다.
하지만 이 여행은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존재의 확인,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구상,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내면적 사유와 성찰의 여행이었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그는 제주에 정착하기로 한다.
무작정 제주에서 살기로 한 그가 얻은 자리는 오현중학교 미술교사였다. 당시는 미술교사가 귀해서 쉽게 자리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8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1982년 제주를 떠날 때까지 14년을 제주에서 생활한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낸 것이다.
결혼 또한 이곳에 와서 처음 묵었던 하숙집의 같은 하숙생이었던 제주일고 불어교사 박서혜씨와 만나 이루어졌다.
70년대 제주미술 ‘관점동인’시대를 이끌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생활은 개인사적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을 듯하다. 더 나아가 제주미술사에 있어서도
그의 제주 체류는 ‘터닝 포인트’였다. 제주화단에 새로운 바람, 질적으로 전혀 다른 변화를 몰고 온
제주 최초의 비구상 회화 그룹인 ‘관점동인(觀點同人)‘의 창립을 주도한 것이다. 사실적인 형상의 구상회화 중심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던 제주에서 젊은 강광과 그보다 10년 아래 청년 작가들은 관점이라는 동인활동을 통해
지역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뉴웨이브의 기수가 된다. 당시 비구상 회화의 출현은 화단이나 일반인들에게
매우 낯선(어쩌면 외계의 미술을 대하 듯. 어! 이런 것도 그림이냐는 반응의...) 것이었다.
미술 하면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정물화가 전부 인줄 알았던 도민 사회와 문화계에 관점전(展)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관점동인’의 창립선언문에 드러난 그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창조의 능력은 신(神)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예술가들도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의 능력, 이것은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힘을 얻기에는 태만이 깃들 수 없으며,
안일함이 같이 할 수 없으며, 타협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만에는 퇴보가 따르게 되고, 안일함에는 답습만이 있으며,
타협에는 창조의 포기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제주에도 미술의 새로운 숨결을 느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 젊은이 몇이 모여 그 모임을 관점(觀點)이라 칭하고 태만과 안일과 타협을 멀리하며 창조의 힘을 얻기에 힘쓰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창립전(展)에서 밝힌 창립 배경은 “50년대 6.25 동란을 피해 온 몇몇 작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양화(洋畵)가 도입되기 시작,
이후 60~70년대에 이르는 동안 사실주의적 구상 일변도의 답습 경향에서 탈피, 미술의 다양성과 개성적 표현과 조화를 모색하는 실험정신에서 출발,
구 상세계는 물론 추상 이루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가히 도전적이다. 당시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제주화단의 형성 초기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기존 제주 화단이
사실화 중심의 구상 회화 일변도로 답습되는 경향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들은 당시 미술협회와 제주대학 교수 그룹이 주도하던 제주 화단의 상태를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직격한 것이다.
1977년 창립전(展)은 제주 시내 대호다방(당시는 다방이 갤러리 역할을 하던 시대였다.)에서 열렸는데,
이 전시는 요즘 세태에서는 우스운 에피소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당시는 제주화단에 파란을 일으키는 격렬한 기득권과의 쟁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강광, 고영석(제주대 4년),
강요배(서울대 3년), 백광익(제주대 4년), 오석훈(제주대 졸업), 김용환(제주대 3년), 정광섭(제주대 3년) 등 7명이 참여하기로 했으나,
대호다방 창립전(展) 에 작품을 내건 작가는 강광, 강요배, 오석훈 등 3인 뿐이었다. 강요배는 학생이었지만 제주대생이 아니었기에 출품이 가능했다.
백광익의 회고에 따르면 이렇게 된 배경이 당시 추상화나 비구상 회화에 대한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진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제주대에는 변시지, 문기선, 양창보 교수 등이 포진하고 있었고 강광은 시간강사였다. 나름대로 예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인 그룹들은 학년을 떠나 강광에게 열광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들 학생들에게는 정작 교수들이 고리타분하게
‘산천초목화(풍경 중심의 구상회화를 비꼰 당시 용어)’만 그리라는 ‘꼰대’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관점전 출품은 기성화단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또한 이 전시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도 우려했을 것이다.
출품 학생에 대한 제명 처분 경고까지 나돌면서 당시 늦깎이 재학생이었던 고영석, 백광익과 3학년이었던 김용환, 정광섭등은 출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관점동인 창립전(展)의 팸플릿에는 이미 인쇄된 개인별 페이지에 빨간 스템프로 불참이란 도장이 찍혀 있다.
제주대 교수들의 불허로 인해, 출품하지 못한 참여 작가들의 페이지다.
이듬해에는 학교를 마친 고영석, 백광익 등이 참여하였고,
3회전부터는 당시 미술계의 재야 그룹이었던 한명섭, 박조유, 고영우 등과 갓 졸업한 김순관, 김용환 등이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멤버십이 확정된다.
이후 고경훈, 고길천 등이 참여하면서 관점전은 지역의 역량 있는 작가들이 참여 하는 대표적인 그룹으로 자리를 잡는다.
강광은 이들의 선배 그룹에 속하면서 리더 격으로 이들과 함께 소위 제주 미술의 ‘관점시대’를 연 것이다.
제주 미술사에서 ‘관점동인’의 등장은 고답적인 풍경화나 일제시대 선전(鮮展)에서부터 이어져 온 소위 ‘국전풍’의 수묵산수나
인물화나 풍경 중심의 서양화 작품이 대부분인 지역 화단에 일대변화,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일대 문화적 쇼크를 가져온다.
소위 제주지역 모더니즘 미술의 개막은 이처럼 파란을 일으키며 시작되었다.
작품으로서의 성패를 제쳐놓고, 우선 전체 회원들의 작품이 질적 평형(平衡)을 유지하고 있는 점,
그러면서도 각각의 패턴을 고수하고 있고,
그래서 자의식(自意識)에 바탕을 둔 자기 실현의 전조(前兆)가 뚜렷하다는 점 등이
이 전시회를 보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대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80년 2. 14. 제남신문)
위의 인용문은 1980년 초 당시 한국미술청년작가회에서 초청한 ‘관점동인’의 서울전(展)을 보고
신문에 기고했던 미술평론가 김인환의 전시 평이다.
위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소위 촌뜨기 시골 내기들의 서울 나들이에서 보여준 창작역량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관점동인’은 강광의 제주 체류 기간 가장 활발하게 활동이 이루어졌고, 그의 이주 뒤에도 한동안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관점 시대의 전성기는 1977년 창립부터 1985년 전후의 10여 년 간의 시기로서 미술사적 의의도
이 시기에 국한해 의미를 갖는다. 관점전은 시들해졌다가 이후에도 다시 전시를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해서 1992년까지 이어졌으나,
미술사적 의의가 크지는 않았다. 이는 이미 청년정신의 발로였던 관점의 동력이 상실되었고,
기성세대에 편입된 멤버들이 새로운 시대에는 또 다른 답습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까닭이다.
하지만 ‘관점동인’의 등장과 활동은 제주 미술사에서는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술 이념은 크게 내세운 것이 없지만,
제주판 모더니즘 시대의 개화, 즉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한 형식 실험의 시대를 열면서 지역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다.
이는 제주 미술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던 시대적 조류로서 이후
제주 미술계의 후학들에게 다양한 지역 미술의 개화를 가능케 한 선험적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삶과 문화 겨울호(제84호)는 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포털 제주인놀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제주문화예술재단,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갤러리 방문 시 무료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
" 불온한 미의식으로 시대의 징후적 위기를 포착한 강광, 그의 제주시대를 기억하다 "
글 박경훈(작가)
“미(美)의 외면은 쉽게 얻어지나, 미의 내면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 강광, 1977년 6월 22일 관점창립전 팸플릿에서
북청사람 제주에 오다
강광(姜光) 선생은 ‘북청 물장수’로 유명한 북청 사람이다. 1940년에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난 그는 6.25 한국전쟁 발발 직전 서울로 이주했다.
부친은 마포에서 양조장을 운영해 나름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성장하면서 경복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에 진학하나 아버지가 작고하면서 가세가 기울어(투병 과정에서 가산 소진) 대학시절엔 휴·복학을 거듭하는등
입학 6년 만인 1965년에야 어렵게 졸업한다. 졸업 후 군대에 간 그는 월남전에 참전하게 된다. 제대 하고 나서 바로 전국을 여행한다.
하지만 이 여행은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존재의 확인,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구상,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내면적 사유와 성찰의 여행이었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그는 제주에 정착하기로 한다.
무작정 제주에서 살기로 한 그가 얻은 자리는 오현중학교 미술교사였다. 당시는 미술교사가 귀해서 쉽게 자리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8년의 일이다. 이후 그는 1982년 제주를 떠날 때까지 14년을 제주에서 생활한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낸 것이다.
결혼 또한 이곳에 와서 처음 묵었던 하숙집의 같은 하숙생이었던 제주일고 불어교사 박서혜씨와 만나 이루어졌다.
70년대 제주미술 ‘관점동인’시대를 이끌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생활은 개인사적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을 듯하다. 더 나아가 제주미술사에 있어서도
그의 제주 체류는 ‘터닝 포인트’였다. 제주화단에 새로운 바람, 질적으로 전혀 다른 변화를 몰고 온
제주 최초의 비구상 회화 그룹인 ‘관점동인(觀點同人)‘의 창립을 주도한 것이다. 사실적인 형상의 구상회화 중심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던 제주에서 젊은 강광과 그보다 10년 아래 청년 작가들은 관점이라는 동인활동을 통해
지역 회화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뉴웨이브의 기수가 된다. 당시 비구상 회화의 출현은 화단이나 일반인들에게
매우 낯선(어쩌면 외계의 미술을 대하 듯. 어! 이런 것도 그림이냐는 반응의...) 것이었다.
미술 하면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정물화가 전부 인줄 알았던 도민 사회와 문화계에 관점전(展)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관점동인’의 창립선언문에 드러난 그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창조의 능력은 신(神)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예술가들도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의 능력, 이것은 위대한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힘을 얻기에는 태만이 깃들 수 없으며,
안일함이 같이 할 수 없으며, 타협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만에는 퇴보가 따르게 되고, 안일함에는 답습만이 있으며,
타협에는 창조의 포기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제주에도 미술의 새로운 숨결을 느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여기에 젊은이 몇이 모여 그 모임을 관점(觀點)이라 칭하고 태만과 안일과 타협을 멀리하며 창조의 힘을 얻기에 힘쓰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창립전(展)에서 밝힌 창립 배경은 “50년대 6.25 동란을 피해 온 몇몇 작가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양화(洋畵)가 도입되기 시작,
이후 60~70년대에 이르는 동안 사실주의적 구상 일변도의 답습 경향에서 탈피, 미술의 다양성과 개성적 표현과 조화를 모색하는 실험정신에서 출발,
구 상세계는 물론 추상 이루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가히 도전적이다. 당시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제주화단의 형성 초기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기존 제주 화단이
사실화 중심의 구상 회화 일변도로 답습되는 경향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들은 당시 미술협회와 제주대학 교수 그룹이 주도하던 제주 화단의 상태를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직격한 것이다.
1977년 창립전(展)은 제주 시내 대호다방(당시는 다방이 갤러리 역할을 하던 시대였다.)에서 열렸는데,
이 전시는 요즘 세태에서는 우스운 에피소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당시는 제주화단에 파란을 일으키는 격렬한 기득권과의 쟁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강광, 고영석(제주대 4년),
강요배(서울대 3년), 백광익(제주대 4년), 오석훈(제주대 졸업), 김용환(제주대 3년), 정광섭(제주대 3년) 등 7명이 참여하기로 했으나,
대호다방 창립전(展) 에 작품을 내건 작가는 강광, 강요배, 오석훈 등 3인 뿐이었다. 강요배는 학생이었지만 제주대생이 아니었기에 출품이 가능했다.
백광익의 회고에 따르면 이렇게 된 배경이 당시 추상화나 비구상 회화에 대한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진들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제주대에는 변시지, 문기선, 양창보 교수 등이 포진하고 있었고 강광은 시간강사였다. 나름대로 예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인 그룹들은 학년을 떠나 강광에게 열광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이들 학생들에게는 정작 교수들이 고리타분하게
‘산천초목화(풍경 중심의 구상회화를 비꼰 당시 용어)’만 그리라는 ‘꼰대’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관점전 출품은 기성화단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또한 이 전시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해서도 우려했을 것이다.
출품 학생에 대한 제명 처분 경고까지 나돌면서 당시 늦깎이 재학생이었던 고영석, 백광익과 3학년이었던 김용환, 정광섭등은 출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관점동인 창립전(展)의 팸플릿에는 이미 인쇄된 개인별 페이지에 빨간 스템프로 불참이란 도장이 찍혀 있다.
제주대 교수들의 불허로 인해, 출품하지 못한 참여 작가들의 페이지다.
이듬해에는 학교를 마친 고영석, 백광익 등이 참여하였고,
3회전부터는 당시 미술계의 재야 그룹이었던 한명섭, 박조유, 고영우 등과 갓 졸업한 김순관, 김용환 등이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멤버십이 확정된다.
이후 고경훈, 고길천 등이 참여하면서 관점전은 지역의 역량 있는 작가들이 참여 하는 대표적인 그룹으로 자리를 잡는다.
강광은 이들의 선배 그룹에 속하면서 리더 격으로 이들과 함께 소위 제주 미술의 ‘관점시대’를 연 것이다.
제주 미술사에서 ‘관점동인’의 등장은 고답적인 풍경화나 일제시대 선전(鮮展)에서부터 이어져 온 소위 ‘국전풍’의 수묵산수나
인물화나 풍경 중심의 서양화 작품이 대부분인 지역 화단에 일대변화,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일대 문화적 쇼크를 가져온다.
소위 제주지역 모더니즘 미술의 개막은 이처럼 파란을 일으키며 시작되었다.
작품으로서의 성패를 제쳐놓고, 우선 전체 회원들의 작품이 질적 평형(平衡)을 유지하고 있는 점,
그러면서도 각각의 패턴을 고수하고 있고,
그래서 자의식(自意識)에 바탕을 둔 자기 실현의 전조(前兆)가 뚜렷하다는 점 등이
이 전시회를 보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공감대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980년 2. 14. 제남신문)
위의 인용문은 1980년 초 당시 한국미술청년작가회에서 초청한 ‘관점동인’의 서울전(展)을 보고
신문에 기고했던 미술평론가 김인환의 전시 평이다.
위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소위 촌뜨기 시골 내기들의 서울 나들이에서 보여준 창작역량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관점동인’은 강광의 제주 체류 기간 가장 활발하게 활동이 이루어졌고, 그의 이주 뒤에도 한동안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관점 시대의 전성기는 1977년 창립부터 1985년 전후의 10여 년 간의 시기로서 미술사적 의의도
이 시기에 국한해 의미를 갖는다. 관점전은 시들해졌다가 이후에도 다시 전시를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해서 1992년까지 이어졌으나,
미술사적 의의가 크지는 않았다. 이는 이미 청년정신의 발로였던 관점의 동력이 상실되었고,
기성세대에 편입된 멤버들이 새로운 시대에는 또 다른 답습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 까닭이다.
하지만 ‘관점동인’의 등장과 활동은 제주 미술사에서는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술 이념은 크게 내세운 것이 없지만,
제주판 모더니즘 시대의 개화, 즉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한 형식 실험의 시대를 열면서 지역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다.
이는 제주 미술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던 시대적 조류로서 이후
제주 미술계의 후학들에게 다양한 지역 미술의 개화를 가능케 한 선험적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