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Press Release
제공일자2011. 6. 2
제공부서문화기획팀 연락전화710-3492, 010-9014-1303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J.M.G. 르 클레지오 초청
□ 제주를 사랑하는 르 클레지오, 제주명예도민 되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에 반해 세 차례에 걸쳐 제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취재해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에 제주를 널리 알려온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J.M.G. 르 클레지오가 8일 제주명예도민증을 받는다.
특히 르 클레지오는 제주에 머물면서 직접 취재, 집필한 <제주기행문>을 유럽 최대 잡지 ≪GEO≫ 창간 30주년 기념 특별호(2009.3)에 게재함으로써 제주에 대한 ‘이유있는 사랑’을 마음껏 드러냈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프랑스 태생 르 클레지오에게 있어 그의 선조들이 대를 이어 둥지를 틀었던 인도양의 섬나라 모리셔스 공화국은 정신적 모태이자 문학적 고향. 르 클레지오는 ‘제주’에서 ‘모리셔스’를 발견했고, 그것은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의 동질성뿐 아니라 4․3의 아픔이 아직 살아있는 제주와, 과거 열강의 식민지로서의 슬픔을 간직한 모리셔스의 역사적 동질성에 공감한 것이었다. 그가 제주와 모리셔스를 ‘자매섬’으로 표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번 르 클레지오의 제주 방문은 그동안 제주와 모리셔스의 문화예술 교류를 적극 주선해온 그가 모리셔스 문학인들과 함께 설립, 활동하고 있는 ‘문화교류와 평화를 위한 재단(FIP, Fondation pour I'Interculturel et la Paix)’을 지난 해 말 직접 방문한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 양영흠)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 르 클레지오와 함께 대화하고, 함께 걷다
르 클레지오는 5일 오후 제주에 도착, 8일과 9일 제주에서의 공식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일시내용장소비고
8 水
11:00제주명예도민증 수여도청 지사실11:30기자간담회도청 기자실14:00~16:00<제주를 사랑한 르 클레지오의 문화강좌>
- 나의 삶과 문학 속에 담긴 섬, 그리고 제주와의 만남
웰컴센터일반도민,학생,공무원,문학인
9 木
11:30재단 방문(재단 및 직원 소개)재단14:00~16:00<르 클레지오와 함께 걷다>
-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제주 칠머리당 탐방 및 영등굿 예능보유자 김윤수 심방 및 예능전수자들과 간담회 및 문화강연사라봉,
제주칠머리당김순이시인해설
일반도민,문학인
□ 르 클레지오와 제주의 인연은 계속된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이번 르 클레지오 초청에 이어 올 하반기 제주-모리셔스 사진 교류전을 모리셔스에서 가질 예정이다. 양영흠 이사장은 “모리셔스 공화국은 유럽, 인도, 아프리카, 중국문화가 다양하게 어울려 독특한 문화예술분야를 확장시켜온 국가”라며 “국제자유도시 제주도민들에게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와 풍습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문화의 다양성과 문화상대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돼 지난 해 말 FIP를 방문, 사진전을 비롯한 문화교류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제주와 모리셔스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중인 사진전의 주제는 <제주-모리셔스, Yesterday & Today>. 르 클레지오도 모리셔스에서 사진전이 열리는 기간 동안 동참할 예정이다. 유럽관광객이 몰리는 모리셔스에서의 사진교류전은 세계자연유산의 섬 제주를 널리 알리는 홍보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GEO》에 실린 르 클레지오의 제주 기행문 전문
제주의 매력에 빠진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1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방랑 작가는 그가 여러 번 머문 적 있는 한국을 좋아한다. 풍경들, 무당들, 유령들……. 이 나라 가장 남쪽에 있으며, 또한 제주라 불리는 이 섬에서 그는 이 땅과 사람들의 우수에 놀랐다.<편집자 Antoine de Gaudemar>
≪그들은 첫 냄새, 가까운 숲의 신선함, 용암의 유황냄새, 칸나와 야생 난초의 향기를 발견한다.≫
섬에는 서글픔이 있다. 우리는 가슴을 짓누르는 이것의 근원을 모른다. 아마도 바람이거나 모든 것, 바위, 나무 기둥, 연못물, 바다까지 물들이는 이 녹청색일 게다. 제주에서 이 감정은 더 강하다. 여러분은 세상의 끝에, 사람들이 말하듯이 기지(旣知)의 문에, 무한한 태평양과 지구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넓은 대륙의 초석 사이에 있다. 문 또는 성벽. 나는 이 해역에 처음 온 항해사들 가운데 한 명이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이 왠지 모르지만 켈파트(Quelpaert)라고 부를 이 섬에 난파하기 직전에 사로잡혔을 감정을 상상한다. 폭풍우, 바람, 거대한 파도를 밀어치는 바다, 그리고 돌풍이 잠시 개었을 때 검은 현무암 해안을 지배하는 거의 이천 미터에 달하는 화산 한라산의 모습이. 아마도 그는 선원들과 함께 지옥의 문 앞에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있다 난파 후에 생존자들은 잿빛 해변을 걷는다. 그들은 수평선을 한 바퀴 돌고선 로빈슨 크루소에 영감을 준 선원 셀키릭(Selkirk)처럼 무인도에 난파했다고 조금 성급하게 결론지었을 게 분명하다. 몽환적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풍파에 시달린 검은 바위들, 그리고 해안에는 구름 같은 폭풍이 걸리는 숲이라기보다는 털이라 할 식물군락. 그리고 섬에 접근할 때 맨 먼저 들리는 음악 새들의 온화한 지저귐이 정적을 채운다. 나는 네덜란드인들의 발자국이 검은 모래사장에 남긴 자취, 바람과 파도에 얼이 빠진 그들의 시선을 상상한다. 그러는 동안에 조금씩 식물의 온기가 그들을 둘러싸고, 그들은 첫 냄새, 가까운 숲의 신선함, 용암의 유황냄새, 칸나와 야생 난초의 향기를 발견한다. 이것은 은총의 순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음을 스쳐갔고 -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익사했다 - 지옥이 문이 그들에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자라고 믿는다. 그들은 오인했음을 깨달을 것이다. 절의 꼭대기에서 경보가 울리고, 몽골 조랑말을 탄 군대가 창과 칼집 없는 칼을 들고 해변에 도착한다.
헨드릭 하멜과 선원들은 십년 이상을 한국의 포로로 머무를 것이다. 남쪽으로 망명한 그들은 어부들의 동조로 도망쳐 고향 네덜란드를 다시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심한 대우(태형과 겨우 연명할 식량)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주에서의 첫 순간들, 코지의 아름다움, 화산의 장엄함, 그들이 첫 밤을 보낸, 거북이 등처럼 둥글고 따뜻한 어부들의 집들, 대나무 속에 익힌 밥맛, 미역국과 새빨간 김치, 몸을 데우는 소주 몇 잔, 사람들이 그들에게 준 모든 과일들, 무척 달콤한 감귤, 꿀 같은 감에 대한 향수를 여생 동안에 간직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 없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포록과 검정. 섬의 우수를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남한을 뒤흔들고 한라산을 생성한 마지막 화산 폭발로 바다에서 솟아오른 화구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설날 햇빛은 그들이 일 년 내내 간직한 상서로운 일들을 가져올 것이다. 이 바위는 다른 터, 모리스 섬의 모른(Morne) 바위를 내게 상기시킨다. 풍경은 같은 비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48년 9월 25일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마을사람들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것,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모리스 섬의 모른(Morne)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 인도양으로 불쑥 나온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군인들이 도착하는 걸 보았을 때 - 사람들은 군인들이 노예들의 해방을 알리러 가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총을 들고 사람들을 해방하러 가겠는가? - 그들은 허공에 몸을 던졌다.
그러므로 공산 진영과 ‘자유세계’가 맞선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다. 모든 것은 4월 3일(한국말로 사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에 의한 양민학살을 일으킨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매카시즘을 알리는 숙청정책에 영향을 받은 미국공권력의 지원과 현지 군정의 감독을 받으며 플라워 장군과 한국 군대는 학살 - 제주주민 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을린 땅’ 작전 - 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인구의 십분의 일이라고 한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가족들은 바다에서 솟는 해를 보러 바위로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와 삼촌을 잃은, 시인이자 숙박업주인 강중훈 씨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편 한편이 그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내가 그에게 그 기억에 대해, 다시 말해서 어떻게 자신의 가족을 처형한 사람들과 함께 마을에서 계속 사는 걸 받아들였는지 질문하면,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서 대답한다. 그날 성산포의 한 여인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자신의 남편을 보았다. 작은 트럭은 마을의 골목을 따라 멀러져갔다. 하지만 그녀는 해변에서 총살당한 사람들 가운데서 남편의 시신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한 채 몇 달이 지났다. 이 학살의 시기에 어린아이들과 혼자 사는 여인에세 삶은 위험했다. 매순간 그녀는 이번에는 자신이 체포되어 살해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운명의 길은 여러 가지다. 왜냐하면 섬의 이 지역을 지위하던 경찰들 가운데 한명이 이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결혼하기를 제안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허락했다. 그 경찰은 자신이 처형케 한 남자의 아이들을 인정하고, 자기 자식들처럼 키우고 보호했다. 감동적이면서도 끔찍한 이 이야기는 제주의 혼, 슬프면서 동시에 섬에 베어든 살려는 욕구로 채워진 이 철학의 일부다.
제주는 귀신과 신령의 섬이다. 우리가 가는 어디에서건 길라나 마을 입구에서나 바위에서나 벌판 가운데서나 일본 남부에서 가주마루(kajumaru)라고 불리며 처녀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노는 간교한 존재 금부(kembu)의 소굴로 쓰이는 거대한 팽나무(painnamu)의 뒤엉킨 뿌리에서나 그 표시가 드러난다.
제주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한국에 있다. 모든 게 육지와 다르다. 주거, 관습, 몽골어와 섞였다는 더 투박하고 더 노래하는 듯한 언어마저도. 전설은 특히 다르다. 육지의 한국인들이 곰과 호랑이에게서 탄생했다면 제주사람들은 더 시적인 근원을 갖고 있다. 무척 오래 전에 일곱 여인이 바다에서 나와 헐벗은 바위에 홀로 살던 일곱 남자와 결혼했다. 이 결합으로 제주주민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문명에서 부드럽고 육감적인 모든 것, 익힌 음식, 광주리 엮는 법과 실 잣는 기술, 그림과 노래, 그리고 틀림없이 시-제주는 오늘날도 여전히 평방미터 당 작가의 비율이 가장 높다-가 탄생했다. 제주 바다에는 일본 남쪽 바다처럼 용의 왕인 용왕(Yongwang)이 통치하는 인어들이 있다. 하천과 동굴은 아침에 안개 머플러를 두룬 모습을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선녀(seonnyeo)들의 거처다. 전설에 의하면 옥황상제의 일곱 시녀가 천지연폭포에 내려오고 게다가 이곳에는 그녀들을 나타내는 선녀의 다리, 선님교(Seonimgyo)라 불리는 유명한 다리가 있다.
제주에서 나오는 모든 신화적 형상 가운데 가장 온후한 것은 틀림없이 길목이나 마을 어귀, 때로는 바닷가에 서 있는 돌로 만든 할아버지 돌하루방(Dollharubang)이다. 용암에 조각된 그는 한 손을 다른 손보다 올리고 움켜잡을 준비가 된 장터 씨름꾼의 자세로 서 있다. 그는 헨드릭 하멜이 자신의 일기에 묘사한 것들과 비슷한 높은 모자를 쓰고 있다. 그의 까칠까칠하고 넓죽한 얼굴은 미소로 찢어지지만 툭 불거진 그의 눈은 감히 접근하는 누구든지 쏘아본다. 그는 웃음을 자아내고, 즐겁게 하지만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인 제주사람들이 몽골이나 일본에서 오는 침입자들에게 저항하기 위하여 때때로 늘어놓은 돌로 만든 군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층 더 놀라운 것은 마을 입구의 마르고 검은 돌탑들이다. 그 꼭대기에는 날개 편 독수리를 형상화한 석회암 덩어리가 있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끝 중부 멧시코의 푸레페차(Purepecha) 인디언들에게서 조상신을 상징하는 이와 똑같은 것을 발견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다시피 귀신은 도처에 있다. 제주에서 가장 놀라운 박물관들(드제네Djenné 회교사원의 크기 고대로 재연한 아름다운 아프리카 예술 박물관에서부터 성 박물관과 영화 박물관을 거쳐 곰 인형 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이십 여개나 있는) 가운데 하나는 소박하고 감동적인 민속 박물관이다. 재치 있고 현명한 노인 진성기 교수가 창설하고 경영하는 이 박물관은 한국 샤머니즘의 근간을 이루는 귀신 ‘당(tang)’신들을 방이나 정원에 가장 비범하게 모아서 전시해놓은 왜정시대의 낡은 집이다. 잡초 속에 반원으로 배치된 화산 석으로 만든 비석들은 태고로부터 솟아오른 듯하다. 어떤 것들은 너무나 오래되어 비바람에 깎였다. 아주 희미한 윤곽에 콧등에 의해 분리된 두 눈이 있는 얼굴이라기보다는 가면들. 햇빛에 반짝이는 거미줄에 감기고 이끼 낀 채 땅에서 솟은 듯한 몸의 윤곽, 삼각형 얼굴들. 예를 들어 천주님(Ch'eonjunim) 같은 그들의 이름은 이 섬의 가장 오래된 주민, 반 신, 아마도 조상들의 이름을 상기시킨다. 용암의 주민들. 우리는 이 대양의 다른 쪽, 마르키즈 제도 폴 고갱의 무덤 위의 ‘오비리(Oviri)’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또는 한국 남쪽 운주사의 여전히 바위에 붙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누운 큰 부처들도. 또한 저승을 연결하는 첫 문자인 듯 신비로운 다섯줄이 새겨진 외계인의 커다란 눈을 비스듬히 흘기는 그 돌 가면도.
제주에는 당신(堂神)이 나무만큼 많다. 일본 남부의 섬 아마미(Amami)에서 나는 고대의 자연 숭배 여사제인 노로(noro)가 묻힌 장소를 보았다. 제주에도 대부분이 여자인 무당(mudang)이 있는 곳은 똑같은 장소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인 무속신앙 당신(tangsin)은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굿(kut)이라 불리는 제식에서 귀신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고 진 교수는 정의한다. 제주에서만도 진 교수는 이백오십 개의 숭배소와 천팔백 귀신들을 조사했다! 고대 종교가 여기서 불교와 유교뿐만 아니라 일본 지배자의 신토이즘(shintoïme)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력히 유지되었다.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소농이나 어부 같은 민중이지만 무속신앙은 문화, 음악, 춤, 문학에 온통 배어 있다. 당신은 모든 시대와 모든 역사를 연결하는 길잡이며, 몽골과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며, 남태평양에서 온 고대 전설이다. 당신은 또한 혈통을 증명한다. 박씨 같은 제주의 어떤 가계는 이십이 세대 내내 어머니부터 딸까지 무당이다!
제사 장소는 외딴 곳에 숨어 있다. 제주시의 현대적 건물들과 고속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돌로 만든 빈터가 존재하며, 그 가운데에는 큰 나무 숲이 있다. 이 나무 가지에는 알록달록한 비단 리본이 매어져 있다. 숭배자들이 모이는 곳이 여기다. 지금 그들은 여기서 리본을 묶고 제사 음식와 음료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그을린 얼굴의 시골아낙 같은 이 노파가 청바지를 입고 유행하는 운동화를 신은 학생인 듯한 처녀를 조수로 둔 무당임이 틀림없다. 분위기는 명상보다는 오히려 가족의 축제다. 노는 아이들이 있고, 나무 그늘에 쭈그린 나이 든 사람들이 있다. 도회지 차림의 어중이떠중이 몇 명도. 큰 나무는 리본을 다시 걸치고 낮은 가지는 거인의 팔처럼 벌렸다. 용마루에서는 까마귀와 까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나무에는 리본이 햇볕을 쬐고, 거미는 이 치장물들에 거미줄을 쳤다. 고대 의식이지만 현대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간직할 줄 아는 인상이다. 이상하게도 이 제식은 오늘날 자연과의 접촉을 되찾으려는 신세대의 갈망, 모든 추상을 부정하는 일종의 즉각적이며 감각적인 신앙으로 되돌아온다.
제주는 확신의 땅이라기보다 감성의 섬이다. 한국어는 정감적 분위기의 언어다. 이를 서양인들은 때로 지나친 정중함이라고 경멸한다. 정(jeong), 한(han)은 불어로 번역하지 못할 감정들이다. 효심, 혈연 또는 복수심? 한국 영화는 이런 것들로 가득하다. 제주에서 1948년 숙청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영묘 4.3박물관은 이러한 복합성의 예이다. 기억하기, 하지만 또한 관계를 돈독히 하기, 더 멀리 나아가기.
또 다른 감정이 제주에는 강하게 존재한다. 그것은 보람(boram)이다. 이것은 헌신, 쓰라림이 섞인 일종의 자존심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잠수부’로 알려진 제주 여인들의 마음을 끄는 감정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조개나 진주를 캐기 위하여 반나체로 태평양으로 잠수하는 이 여인들에 대한 모호하게 관능적인 기사들을 잡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진실을 더 범속하다. ‘바다의 여자’ 해녀(hae nyeo)는 사실 어업 노동자이다. 날마다 날씨와 바다의 상태가 어떻든 그녀들은 고무 잠수복을 입고, 큰 수경이나 단순한 수영 안경을 쓰고, 납 허리띠를 두르고 호흡을 이, 삼분 정지하는 동안 조개, 성게, 오징어를 캐러 깊숙이 미끄러져 가고, 수확물을 곧 식당에 내다 팔 것이다. 이것은 무척 힘든, 진을 빼는 직업이다. 오늘날 제주 해녀 대부분은 나이든 여자들이다. 그녀들은 관절염, 류머티즘, 호흡기 질환을 앓는다. 산업 형 고기잡이가 그녀들의 수확물을 감소시켰고, 그녀들은 더 멀리 더 깊이 가야 한다. 하지만 그녀들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보람, 이 희생정신이다. 보람이 그녀들에게 의무를 다했다는 자부심을 준다. 그녀들은 자신의 딸들이 더 나은 삶을 알고, 학교에 가고, 시험에 통과하고, 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일을 한다.
햇볕 쨍쨍한 시멘트 바닥에다 그녀들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포획물을 늘어놓는다. 전복과 대합 몇 줌, 보랏빛 성게, 자개로 만든 별들처럼 꿈틀거리는 문어들. 또한 불가사리 몇 개도. 팔기 위한 게 아니라 이 동물은 바다의 대단한 포식자이기 때문이며, 이 경쟁자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에 그녀들은 숨을 다시 쉬고, 수돗물로 몸을 헹구고, 서로 얘기하고, 조금 웃는다. 그녀들은 색깔 화려한 플라스틱 신발을 신었는데, 이게 그녀들의 유일한 교태다. 김훈화는 가장 젊다. 그녀는 오십 여세임이 틀림없다. 그녀의 얼굴은 풍파에 시달려 깊은 주름으로 덮였지만 웃을 때는 이빨이 하얗게 반짝인다. 그녀의 손은 상처를 입었고, 엄지손가락 하나의 손톱은 각피까지 벗겨졌다. 그녀는 말하고, 웃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데에 좀 수줍어한다. 그녀의 장남은 도회지에 있는 삼성에서 직장을 찾았다. 그녀의 딸은 공부하고, 바다로 가지 않을 것이다.
해안 구석에 다른 잠녀들이 돌들 사이에 작은 불판을 설치했다. 그녀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소라 몇 덩어리를 판에다 구울 것이다. 이 여인들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바다, 해안에 몰아치는 이 차갑고 거친 잿빛 바다를 더 잘 안다. 때때로 사고가. 어떤 여자는 너무 오래 숨을 참아서 일산화탄소가 뇌를 손상시켰다. 그녀들은 날마다 가족의 예산을 채울 것을 가져오기 위하여 투쟁한다. 유일한 보상은 자존심과 고통 사이의 이 감정, 자신들이 마지막 희생자가 되리라는 희망이다.
“제주는 마술사의 거대한 모자처럼 대양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진 교수는 장난스럽게 제주를 묘사한다. 제주에는 전설이 곳곳에 있다. 브르타뉴나 스코틀랜드에서처럼 전설은 삶의 매순간에 울려 퍼진다. 화산에서, 이 모든 어둠의 입에서,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용암 터널에서 탄생한다. 재로 된 모든 원추형이 한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아이다. 해안에는 아일랜드에서 ‘거인의 암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주상절리와 그 아름답기가 비슷한 현무암 주상절리가 아침 안개를 매달고 있다. 용 이빨 모양의 암초들 사이에서 햇빛에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포말의 소용돌이가 솟구친다. 먼 파도는 신비로운 낟알들, 괴물 같은 사오리 알들, 심지어 상어 턱뼈까지 실어온다. 토속 신앙은 이마 한가운데에 눈 하나 머리 꼭대기에 뿔 하나 달린 무시무시한 피조물 도깨비(dokkaebi), 이 환상적 존재의 나머지가 상어의 턱뼈 속에 있다고 인정한다. 용왕(Yongwang)이 대양 깊숙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 육지의 남쪽 목포에서 용왕은 호랑이들이 잡아먹으려던 한 버려진 노파에게 바다 속 길을 열어주었다.
제주에서 사람들은 어디에 있던 늘 바다로 향해 있다. 생선과 표류하는 나무를 공금해 주는 행운은 늘 바다에서 온다. 침략의 위험과 파괴자 태풍이 오는 것도 또한 바다에서다. 각자가 이 비영속성의 의미를 꿰뚫고 있고, 운명과 할 수 있는 최선을 구성해야 한다.
바다와 죽음의 이상한 근접성. 여행자가 이 연안을 발견할 때 그를 집어삼키는 우수의 감정이 탄생하는 곳이 틀림없이 여기다. 바람을 막는 돌담길에서, 경사지를 뒤덮은 넓은 갈대밭에서 걷다가 우연히 또는 제주를 둘러싼 열도와 작은 섬들을 일일이 읊으며. 산호해변이 있는 소의 섬 우도, 높은 절벽들이 세상의 끝에서 오는 파도의 끝없는 공격을 받는 마라도, 심연에서 솟아오른 검은 바위들 범섬, 새섬, 문섬, 또는 성산과 그의 검은 모른(Morne) 봉우리 그리고 거대한 칼로 잘린 듯한 새들의 바위들, 배가 난파하기 전에 헨드릭 하멜이 발견한 첫 번째 땅.
매 계절 진실하고 충실하고 몽환적인 제주.
J.M.G. Le Clézio
＊원문(프랑스어)번역 : 고영희
■ 리옹3대학 이진명 교수가 본 ‘르클레지오의 제주찬가’
“그의 글, 한국사람 백마디보다 설득력 클것”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가 한국에 관한 본격적인 산문을 프랑스어로 써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운주사, 가을비’ 등 시 몇 편과 2007년 ‘발라시네(Ballaciner)’란 책에 박찬욱 등 한국 영화감독 3명과의 인터뷰를 부록으로 담은 바 있지만 한국을 소재로 한 본격적인 산문을 발표한 적은 없었다.
프랑스 리옹3대학의 이진명 한국학 교수(사진)는 “르클레지오의 이 글,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 대해 쓸지도 모르는 글들은 프랑스어권에 한국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한국 사람이 백 마디 하는 것보다 백배나 강한 설득력을 지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의 저명 작가가 한국을 소재로 글을 쓴 것은 1901년 6월 서울을 방문한 피에르 로티의 20쪽짜리 ‘서울에서’란 글 이후 처음인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글이 발표된 잡지 지오는 영미권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비슷한 고급 잡지로 세계적 미디어그룹 베텔스만이 유럽을 중심으로 독일어판 프랑스어판 영어판 등을 발행하고 있다. 사진물을 위주로 한 여행기를 주로 게재한다.
이 잡지는 글의 서문에서 “유목민 작가 르클레지오는 몇 차례 체류한 한국을 유달리 좋아한다”며 “한국의 가장 남쪽에 있는 제주란 섬에서 그는 우수(m´elancolie)에 사로잡혔다”고 소개했다.
특히 이번 ‘제주도 여행기’는 ‘제주찬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주도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고 있다.
르클레지오는 이 글에서 하멜의 표류에 대한 상상부터 제주를 대표하는 성산일출봉, 돌하르방, 샤머니즘, 해녀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느낌을 담았다. 그는 특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유목민 작가’답게 성산일출봉에서 인도양의 모른 봉을, 당신(堂神) 조각상에서 마르키즈 제도 폴 고갱 무덤 앞의 오비리 조각상을, 돌탑 꼭대기의 수리 형상에서 멕시코 중부 푸레페차 원주민 마을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걷고 먹고 말하고 자고 사랑하고 꿈을 꾸는 것에 대해 쓸 뿐이다”라고 말했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동아일보 박영대 기자(2009)
Copyright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